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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의 사회문화적 정서

생각 파트너 코치올 2021. 7. 12. 14:23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동서남북 주요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우리의 주택 구조와 뚜렷한 차이를 확인했다. 나는 가옥 구조의 차이에 문화적 정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대학원에서 사회심리학 강의를 하거나 기업체에서 대인관계와 소통 강의를 할 때 소재로 삼았다. 서양 가옥에는 없고 동양 가옥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 한옥의 전형적인 가옥에 있다. 어떤 점이 차이점일까? 이 에피소드는 학교와 기업에서 강의를 시작할 때부터 사용했으니 20년은 지났을 것이다. 내 강의를 들은 수강생이라면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코칭 강의를 할 때 또는 인사평가 면담 강의를 할 때도 사용했다. 어떤 주제와 관련이 있는지를 지금부터 소개한다.

 

처마에 담긴 사회문화적 정서

 

대표적인 차이는 바로 처마이다. 서양의 경우 처마가 없다. 따라서 서양 사람들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기의 고유한 주거 공간이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곳이다. 공권력도 이 공간에 맘대로 들어갈 수 없다. 서양 건물을 보면, 나와 너의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우리의 가옥은 어떤가? 처마가 있다. 처마가 있는 곳은 처마 밑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처마 밑은 누구의 공간인가? 소유권으로 보면, 건물주의 공간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정서로 보면 타인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처마 밑은 너와 나를 심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회색 지대이다. 나는 이 공간을 '정()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서양인의 정서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생명체가 뭘까? 바로 모르는 사람이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만난다면 긴장하게 된다. 세간에 회자되는 이야기를 해보자. 서양 사람들은 타인과 인사를 나눌 때, '하이 hi'하면서 오른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왜 이러한 제스처를 취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서부 개척시대에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다가 낯선 사람이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상대방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의 몸놀림을 보면, 당장 위협적이지는 않다. 그럼 어떻게 상대방과 마주치는 것이 현명할까?

 

 각자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낯선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다. 일차적인 상황 판단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현명한 방법은 오른손을 들어 흔드는 것이다. 즉 상대방에게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서양인이 자기 영역에 타인이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경우는 '초대한 손님'이거나 가족이다. 그 이외의 사람은 현관 밖에서 다음 행동을 집주인으로부터 허락받아야 한다. 가끔 언론에 서양의 주거 생활과 그들의 문화적 사고를 이해하지 못한 동양인들이 그들의 공간에 접근하다가 총에 맞은 사건이 소개되기도 한다.

 

서양인의 경우 나와 타인의 사회적 관계 형성에 여러 규칙을 정하고 따른다. 에티켓도 그중 하나이다. 중세시대에 식사 예절과 의상 등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생활 방식이었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규범적인 언행의 선을 넘으면 쉽게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인의 정서

 

우리의 가옥은 어떤가? 한옥을 보면, 처마가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지나가던 행인이 내 처마 밑에서 머무르도록 허락한다. 집의 끝자락에 있는 사랑방에 봇짐장사를 재워주기도 했다. 그들은 감사의 인사로 파는 물건을 내어 놓기도 했다. 우리는 처마 밑을 다른 사람과 쉽게 공유한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공간을 문화심리학적으로 정(情)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TV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방송에 같이 출연한 사람들은 검사들이었다. 당시에도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데 변호사 출신인 고 노무현 대통령은 검사들과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쌍방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고 노무현 대통령이 넌지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이 표현에는 처마 밑의 정서가 담겨있다. 처마 밑이란 너와 내가 심정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심정을 헤아려 주는 공간이다. 서로가 불편을 주지 않고 서로의 배려에 무언으로 감사하는 따듯한 공간이다. 그런데 대화에서 그 공간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 서로 불편하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두 사람이 의견 차이가 있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를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떤 심정인지 아시죠?"

"아니 말씀을 안 하셨는데 무슨 수로 압니까."

 

정의 공간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쯤 해서 서로 헤아리는 심정으로 갈등을 풀자고 말했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 속마음을 드러내라고 한다. 이제 속마음을 드러내야 다음 대화로 전개될 수 있다는 상황 인식은 갈등보다 더 참혹한 느낌이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사람, 알고 보니 남이었구나."

 

이러한 정의 공간은 기업에서 인사평가 면담을 할 때에도 작동한다. 팀장은 인사평가 결과에 대해 복잡한 속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팀원은 자신의 인사평가 결과를 이해할 수 없으니 객관적인 근거를 말해 달라고 팀장에게 요청한다. 팀장의 마음속에 있는 정의 공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속내를 드러낼수록 정의 공간은 영에 가까워진다. 이제 '우리가 남이냐?'에서 "우리가 남이다.'로 정서가 바뀌기 시작한다.

 

정의 공간은 어느 정도 남았습니까?

 

현대 사회는 초연결사회이지만, 그들의 사회적 관계망에 처마 밑은 있을까? 유무선 망의 개념이 삶의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대 사회에서 처마 밑이라는 공간은 설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적 정서로서 처마 밑의 정은 일상의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처마 밑의 정은 문화적으로 공유되는 공통적 정서이다. 우리가 이 정서를 아직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면, 서로의 안전과 사회적 안전을 지키는 성숙한 동참의 기본이 될 것이다. 가끔 공동체 의식을 위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처마 밑이 사라지는 아픔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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